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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GONGJU CITY

2022.07

이달의 공주 역사인물

충숙공 문극겸

  • 7월의 역사인물 문극겸(文克謙, 1122 ~ 1189) 선생은 고려 중기 문신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임금에게 바른 말을 서슴지 않았던 충직함의 상징인 인물입니다.
  • 선생의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덕병(德柄)으로『고려사』「열전」에 의하면 선생은 효성과 우애가 있고 인자하고 충직한 성품으로 바른 말을 잘하였다고 합니다.
  • 1158년(의종 12)에 문과에 급제한 선생은 1163년(의종 17) 좌정언(左正言)으로 있을 때 방탕한 생활을 하는 의종(毅宗)에게 환관의 횡포, 권신의 부정부패 등을 비판하고 엄벌에 처할 것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의종의 노여움을 사서 좌천되었습니다.
  • 좌천된 뒤 고향인 전라도 남평현(現 나주시)으로 낙향하던 선생은 공주 유구역(維鳩驛)을 지나게 되었는데, 이 때 유구역사의 벽에 시 한 수를 지어 써 놓았다고 합니다.
  • 이후 유구역을 지나는 사람들이 이 시를 활용하여 여러 수의 시를 지었으며, 이러한 내용은 어느 화공에 의해 그림으로 그려져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바른 말을 하는 신하가 서울을 떠나는 그림이라는 뜻의「간신거국도(諫臣去國圖)」라 불리게 되었으며, 임금과 신하가 서로 소통하는 길을 막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는 의견에 따라 선생은 복직되었습니다.
  • 1170년(의종 24) 무신의 난이 일어나 대부분의 문신들이 처벌당하였지만 선생은 바른 말을 서슴지 않았던 충직함이 인정되어 화를 면하였으며, 고위직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다가 1189년(명종 19) 68세의 나이로 별세하였습니다.
  • 시호는 충숙(忠肅)이며, 현재 유구읍 추계리에는 선생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선생의 행적과 관련된 고간원지(叩諫院址)*와 묘소 등이 남아있어 선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간원지 : 문극겸 선생을 모신 사당으로, 그 일대에는 고간원을 비롯하여 문숙공신도비, 재실, 묘소 등이 있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지만 조선 태종의 명으로 고간원을 세웠다고 한다. 1792년(정조 16) 홍수로 인해 무너진 건물을 1907년(융희 원년)에 다시 지었고, 1914년에 완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4년 7월 26일에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공주시는 고려 중기 문신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임금에게 바른 말을 서슴지 않았던 충직함의 상징인 인물이자 유구역과 관련된 이야기를 남긴 문극겸 선생의 삶과 업적을 기리고자 2022년 7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하였습니다.

카드뉴스

2022 충숙공 문극겸1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2022 충숙공 문극겸2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2022 충숙공 문극겸3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2022 충숙공 문극겸4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2022 충숙공 문극겸5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2022 충숙공 문극겸6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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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 공주시 7월의 역사 인물 ‘문극겸’ 선정
  • 고려 중기 문신... 죽음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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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주시, 7월의 역사 인물 ‘문극겸’ 선정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을 다한 문극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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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월의 공주 역사인물 포스터 이미지로 자세한 내용은 하단을 참고해주세요
2022년 7월의 공주 역사인물 공주시 로고 간신거국도를 남기다. 충숙공 문극겸
  • 문극겸의 본관은 남평, 자는 덕병으로 고려 의종과 명종대의 문신이다.
  • 고려사에 의하면 충직한 성품으로 바른 말을 잘하며 사치를 부리지 않았다고 한다.
  • 방탕한 생활을 하는 의종과 부정부패를 일삼는 신하들을 바로잡기 위해 간언을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고향인 나주목 남평현(현 전남 나주)으로 낙향하게 되었다.
  • 낙향하던 중 공주의 유구역을 지나던 문극겸은 고향으로 내려가는 마음을 시로 써놓았고 이후 그림으로 그려져 간신거국도(간언하던 신하가 서울을 떠나는 그림)라고 불리었다.
  • 의종에 의해 조정으로 복귀한 문극겸은 이후 그 충직함이 인정되어 무신정변때도 화를 면하였고 문신으로써 장군직을 겸임하는 시초가 되었다.
  • 충숙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유구읍 추계리에는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사당 고간원지와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