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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GONGJU CITY

2022.12

이달의 공주 역사인물

추포 황신

  • 12월의 역사인물 황신(黃愼, 1562 ~ 1617) 선생은 조선중기 문신이자 임진왜란 때 조선의 국운을 걸고 조선통신사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공주 지역*을 고향으로 삼은 창원황씨의 공주 지역 입향조인 인물입니다.
    • 현재 부여군 부여읍 저석리 일원으로 1914년 조선총독부의「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공주군 반탄면 서원리에서 편입되었음.
  • 선생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사숙(思叔), 호는 추포(秋浦)이며 1601년(선조 34) 스승인 성혼이 비난받자 이를 변호하다가 파직당한 후 공주목 창강(倉江)으로 낙향하면서 공주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 1588년(선조 21)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한 선생은 사헌부 감찰, 전라도관찰사, 공조·호조판서 등 지방직과 중앙직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 선생은 특히 임진왜란 때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는데, 전쟁 초 병조정랑으로 임명되어 병조판서 이항복을 도와 군사 실무를 전담하였습니다.
  • 1594년(선조 27)에는 강화 회담을 위해 일본으로 향하는 명나라 장수 심유경 일행을 따라 조선통신사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 당시 사람들은 전쟁 중 일본에 가면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하여 모두 조선통신사 임무를 피하였는데, 선생은 죽음을 무릅쓰고 조선통신사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강화를 반대하는 조선의 입장을 당당히 밝혔습니다.
  • 종전 후인 1601년 스승인 성혼이 비난받자 이를 변호하다가 파직당한 후 공주목 창강으로 낙향하였으며, 1605년(선조 38)에는 임진왜란 때의 공이 인정되어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임명되었습니다.
  • 1609년(광해군 1)에는 호조판서로 임명되어 전후의 국가 재정을 튼튼하게 만들고 전국적인 양전(量田) 사업을 추진하여 토지구획을 정비하는 등 경제 정책에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 1612년(광해군 4) 임진왜란 때 세자인 광해군(光海君)을 모신 공으로 위성공신(衛聖功臣) 2등에 임명되었으며 회원부원군(檜原府院君)에 봉해졌으나, 1613년(광해군 5) 일어난 계축옥사 때 황해도 옹진에 유배되어 1617년(광해군 9) 별세하였으며, 이후 우의정으로 추증되었습니다.
  • 1629년(인조 7) 공주목 창강서원(滄江書院)에 배향되었으며, 조정으로부터 문민(文敏)의 시호를 하사받았습니다.
  • 문집으로는 조선통신사 임무 수행 중 기록한『일본왕환일기(日本往還日記)』와『추포집』등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 공주시는 조선중기 문신으로 조선중기 문신이자 임진왜란 때 조선의 국운을 걸고 조선통신사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공주 지역을 고향으로 삼은 창원황씨의 공주 지역 입향조인 인물인 추포 황신 선생의 삶과 업적을 기리고자 2022년 12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하였습니다.

카드뉴스

12월의 역사인물 황신1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12월의 역사인물 황신2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12월의 역사인물 황신3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12월의 역사인물 황신4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12월의 역사인물 황신5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12월의 역사인물 황신6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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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 공주시, 12월의 역사 인물 '추포 황신' 선정
  • 조선의 국운을 걸고 조선통신사 임무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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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주시, 조선통신사 임무 수행 ‘추포 황신’ 역사 인물 선정
  • 市, 창원황씨 공주 지역 입향조 인물인 추포 황신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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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2월의 공주 역사인물 포스터 이미지로 자세한 내용은 하단을 참고해주세요
2022년 12월의 공주 역사인물 공주시 로고 조선의 국운을 걸고 조선통신사 임무를 수행하다 추포 황신
  • 선생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사숙(思叔), 호는 추포(秋浦)이며 1601년(선조 34) 스승인 성혼이 비난받자 이를 변호하다가 파직당한 후 공주목 창강(倉江)으로 낙향하면서 공주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 1588년(선조 21)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한 선생은 사헌부 감찰, 전라도관찰사, 공조·호조판서 등 지방직과 중앙직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 선생은 특히 임진왜란 때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는데, 전쟁 초 병조정랑으로 임명되어 병조판서 이항복을 도와 군사 실무를 전담하였습니다.
  • 1594년(선조 27)에는 강화 회담을 위해 일본으로 향하는 명나라 장수 심유경 일행을 따라 조선통신사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 당시 사람들은 전쟁 중 일본에 가면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하여 모두 조선통신사 임무를 피하였는데, 선생은 죽음을 무릅쓰고 조선통신사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강화를 반대하는 조선의 입장을 당당히 밝혔습니다.
  • 종전 후인 1601년 스승인 성혼이 비난받자 이를 변호하다가 파직당한 후 공주목 창강으로 낙향하였으며, 1605년(선조 38)에는 임진왜란 때의 공이 인정되어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임명되었습니다.
  • 1609년(광해군 1)에는 호조판서로 임명되어 전후의 국가 재정을 튼튼하게 만들고 전국적인 양전(量田) 사업을 추진하여 토지구획을 정비하는 등 경제 정책에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 1612년(광해군 4) 임진왜란 때 세자인 광해군(光海君)을 모신 공으로 위성공신(衛聖功臣) 2등에 임명되었으며 회원부원군(檜原府院君)에 봉해졌으나, 1613년(광해군 5) 일어난 계축옥사 때 황해도 옹진에 유배되어 1617년(광해군 9) 별세하였으며, 이후 우의정으로 추증되었습니다.
  • 1629년(인조 7) 공주목 창강서원(滄江書院)에 배향되었으며, 조정으로부터 문민(文敏)의 시호를 하사받았습니다.
  • 문집으로는 조선통신사 임무 수행 중 기록한『일본왕환일기(日本往還日記)』와『추포집』등이 전해지고 있습니다.